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타람 술탄국 (문단 편집) ==== 내정 ==== 술탄 아궁 사후 새로 즉위한 술탄 아궁의 아들 아망쿠랏 1세(Amangkurat I, 또는 하믕쿠랏 1세Hamengkurat I, 재위 1646–1677)는 즉위 이듬해, 기존 수도 카르타 인근의 플레렛(Plered, 수도 1647–1681)에 술탄 아궁의 것보다도 더 크고 웅장한 새 궁전을 짓고 수도를 플레렛으로 옮겼다. 마타람의 [[루이 14세]] 혹은 [[이반 4세|이반 뇌제]]라고 비유할 만한 아망쿠랏 1세는 자신의 영광, 그리고 마타람의 중앙집권화와 안정화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였는데, 이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잔혹하고 무자비한 수단도 가리지 않고 사용하였다. 아망쿠랏 1세는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신하가 있으면 거리낌없이 투옥하거나 살해하였는데, 그중에는 심지어 사위인 치르본의 군주 기릴라야(Panembahan Girilaya, 재위 1649–1677)와 장인인 수라바야의 프킥 공(Pangeran Pekik, 1659년 살해됨)도 있었다. 아망쿠랏 1세는 반란 기도 혐의를 물어 [[울라마]] 수천 명은 물론 그 가족까지 몰살하기도 했다. 중앙 정부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아망쿠랏 1세는 자바 북부 해안 지대의 항구들을 폐쇄하거나 축소하고 선단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교역으로 부를 쌓은 항구 도시가 과거의 수라바야처럼 독립성을 주장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아망쿠랏 1세의 시대에 해양 세력으로서 마타람은 자살 상태에 빠졌고, 마타람은 내륙의 농경지에만 경제를 거의 온전히 의존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